5월 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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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는 어쩌다가 갱들의 천국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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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는 어쩌다가 갱들의 천국이 되었나?

Wikimedia Commons/Marcello Casal Jr/ABr

비극과 고통이 낯설지 않은 나라 아이티에 상상할 수 없는 격변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아이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곳에서 약탈과 폭력을 일삼고 있는 갱단원들을 피해 살던 집을 버리고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가고 있는 중이다.

지난 달에는 미국 대사관을 포함하여 많은 국가의 대사관들과 국제 구호 단체가 아이티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아이티의 공공질서 체계는 완전하게 붕괴되었고, 아이티 시민들을 향한 경찰의 보호 또한 거의 또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티의 군대는 무기와 인원수에 있어서도 갱단원들에 비해 열악한 상황이며, 중앙 정부 또한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푸에르토리코에서 며칠 동안 발이 묶인 아이티의 지도자인 아리엘 헨리(Ariel Henry) 총리는 지난 달 3월말경, 푸에리토리코에서 사임을 발표한 바 있다.

아이티 타임스(The Haitian Times)의 창립자이자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인 게리 피에르 피에르(Garry Pierre-Pierre)는 CNN을 통한 기고문에서 “나는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아이티에서 살고 있던 10년동안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나와 내 가족은 미국에 정착한 120만 명의 아이티 이주민들 중에 속해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천 명의 아이티인들이 프랑스와 캐나다 및 기타 지역에 정착해 왔지만, 현재 아이티에서 발생하고 있는 격변과 같은 상황은 볼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부패에 찌들면서 심각하게 병든 나라 아이티

게리 피에르는 “아이티가 무정부 상태에 이르고, 무장한 괴한들이 불법적으로 폭력과 약탈을 일삼을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수십 년 동안 이어 온 아이티 정치인들과 엘리트들의 부패가 근본적 원인”이라고 말했다.

당시 대여섯 명 정도의 부유한 가족들만이 아이티의 주요 산업 대부분을 독차지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아이티 경제의 거의 모든 부분을 장악하고 세금까지 내지 않는 절대 부패 세력으로 아이티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되면서, 아이티는 결국 오늘날의 국가 붕괴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범죄 집단과 결탁한 아이티의 엘리트들

더욱이, 아이티의 정치인들과 비즈니스 엘리트들은 오랫동안 그들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마약 밀매에까지 관여해 오면서 아이티는 국가라는 개념보다는 부패에 찌든 범죄 집단에 가까웠으며, 실제로 전문가들은 아이티가 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 경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이티의 엘리트들은 또한 아이티의 주민들을 상대로 약탈과 폭력을 일삼는 갱단들과도 연결돼 있다. 2022년 미국과 캐나다는 마약 밀매와 돈세탁등의 범죄 활동에 관여해 온 것으로 의심되는 아이티의 갱단 지도자와 정치인들, 그리고 비즈니스 엘리트 그룹들을 경제적으로 제재하기에 이르렀다.

아이티를 식민지화 했던 열강들과 아이티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무관심

아이티는 프랑스에서 가까스로 독립했지만, 20세기 초반부터 20년 동안 미국의 식민 통치를 받게 되었다. 게리 피에르는 현재의 가난함과 재난이 아이티에서 계속 진행되는 동안, 미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는 아이티에서의 혼란을 그냥 지켜 보고만 있는 중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2022년 가을, 당시 아이티 총리였던 아리엘 헨리는 아이티의 불안정한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미국 정부에게 경제재건 자금과 질서유지를 위해 미군의 개입을 요청했지만 워싱턴에 의해 거부되었다. 케냐를 포함한 여러 국가들 또한 아이티로의 병력 파견을 시도했지만 결국 모든것이 무산되었다.

2010년 발생한 아이티 지진과 희망

지난 2010년 아이티의 수도인 포르토프랭스를 포함해 아이티라는 국가 전체를 파괴했던 대지진은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였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아이티를 돕자는 열풍이 강하게 일어나면서, 아이티에도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는 듯했다.

최악의 재난이 희망으로 이어지는 시발점에서 미국을 포함하여 국제기구와 많은 국가들은 수십억 달러의 지원 약속과 함께 아이티의 재개발을 타진하고 있었다. 아이티는 역사상 처음으로 경제 발전의 꿈을 꾸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었지만, 그러한 꿈은 한 순간에 무너졌다.

아이티에서의 대지진 이후 미국과 여러 국가들로부터 유입된 경제 지원금은 아이티라는 국가의 경제 발전 보다는 아이티를 운영하고 약탈해 온 엘리트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 버렸다.

당시 전 세계로부터 흘러 들어온 아이티 재건 자금과 물자들 대부분은 아이티 상류층의 배만 불리워 주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고, 아이티의 경제 발전과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던 아이티의 일반 서민들의 생활 개선에는 그 자금이 한 푼도 쓰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기적이고 치사한 아이티의 지도자들과 엘리트 계층

1950년대 후반부터 아이티가 외국으로부터 받아오던 원조의 대부분은 당시 악명높은 지도자인 프랑수아 파파독 뒤발리에(François “Papa Doc” Duvalier)의 금고로 귀속되었다.

그의 절도 행위는 그의 아들인 장 클로드 베이비닥 뒤발리에(Jean-Claude “Baby Doc” Duvalier)로 계속 이어졌고, 그는 아이티 재정의 상당 부분을 외국 은행 계좌에 넣어두면서 해외 고급 부동산 구입에 사용했다. 1971년 그가 사망하자 또 다른 부패한 엘리트 계층이 그의 뒤를 계속 이었다.

아이티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 악명 높은 보안군인 통통 마쿠트(Tonton Macoute) 또한 아들과 함께 아이티 재무부가 관리하던 자금 중 상당 부분을 착복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아이티 시민들중 일부는 이들에 대항하는 세력을 만들게 되지만, 그들 역시 점점 갱단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아이티에서의 갱단 출현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오늘날 거리에서 활개치는 아이티 갱단들의 출현은 과거 부패집단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아이티에서 추방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Jean-Bertrand Aristide) 전 대통령이 1955년 미군의 도움으로 아이티에서 정권을 다시 차지한 때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티로 돌아온 아리스티드는 당시 아이티의 군대를 해산하고 그 자리를 대신해 민간인들을 경찰관으로 임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당시 아이티의 기존 세력과 충돌하면서 다시 한번 아이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 후 몇 년 동안 아프리카로 망명하게 되었다.

그가 아이티에서 추방된 후, 대담해진 민간 경찰관들은 마약과 무기를 거래하는 갱단 범죄 조직으로 변하게 되었고, 아이티의 반복되는 식량 부족 속에서 아이티에서 가장 힘없고 취약한 밑바닥 지역의 시민들을 약탈하고 착취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아이티에서 갱단이 출현하게된 배경이라고 게리 피에르는 강조하면서 “아이티의 역대 대통령과 총리 및 국회의원들은 갱단들을 개인적으로 이용해 왔으며, 아이티의 갱단은 미국의 갱단과는 달리 느슨하게 조직돼 있으며, 이들은 궁극적으로 시민을 위협하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현재 아이티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인물은 전직 군인 출신인 기 필립(Guy Philippe)으로서, 그는 돈세탁 및 기타 불법적인 범죄 활동으로 인해 미국 교도소에서 6년을 복역한 후 최근 아이티로 돌아온 인물로서, 현재 아이티는 국가를 통치할만한 인물이 없어 희망이 완전하게 단절된 상태이다.

아이티 재건과 미국의 역할

아이티 재건에는 미국의 지원과 도움이 거의 절대적이다. 아이티는 철저하게 망가진 국가로서, 현재 아이티에 거주하고 있는 인물로는 아이티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게리 피에르는 강조하고 있다.

아이티의 폭력을 진압하고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아이티 정부의 역량을 넘어서는 큰 군사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며, 그 이후에 찾아올 혼란에 대해서는 미국의 외교적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략 메릴랜드 정도의 크기에 미국 해안가에서 2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 중 하나인 아이티를 돕기 위해 미국 정부가 나설지는 미지수이다. 그런데, 아이티의 안정은 현재로서는 미국의 도움없이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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