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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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가장 탁월한 결정, “루이지애나 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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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가장 탁월한 결정, "루이지애나 매입"

Thomas Jefferson & US Map for Purchase of Louisiana

1803년 미국 정부가 프랑스 정부로부터 1,500만 달러에 사들인 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 Vente de la Louisia)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탁월하고 현명했던 결정으로 간주되고 있다.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매입하기 전까지 북미 대륙에서는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의 일환으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프렌치 인디언 전쟁(French and Indian War)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유럽에서는 7년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때였다.

유럽에서 발발한 7년 전쟁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프로이센에게 빼앗긴 슐레지엔을 되찾기 위해 프랑스 및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전쟁을 준비하자, 프로이센은 영국과 동맹을 맺고 오스트리아를 선제 공격하게 되면서 발발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7년 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유럽의 열강들 대다수는 이 전쟁에 참여했으며, 당시 열강들은 인도등이 포함된 식민지 쟁탈전에 열을 올리면서 전쟁의 양상은 더욱 확전되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북미 대륙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프렌치 인디언 전쟁

유럽에서 7년 전쟁이 일어나고 있을 때, 앞서 말했다 시피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오하이오강 주변의 인디언 영토를 둘러싸고 1754년 부터 1763년 까지 프렌치 인디언 전쟁이라 불리우는 영국과 프랑스간의 식민지 쟁탈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 이들 두 국가들은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들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영국측에서 볼 때 프랑스가 인디언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프랑스 인디언 전쟁으로 불렀으며, 프렌치 인디언 전쟁에서는 결국 프랑스가 영국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 전쟁의 결과, 영국은 제2차 백년전쟁이라고도 불리울 수 있는 북미 식민지 전쟁에서 가장 큰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프랑스는 미시시피강 서쪽의 루이지애나를 동맹국인 스페인에 할당했는데, 이는 스페인이 영국에게 패하면서 1763년 2월 체결된 파리 조약에 따라 플로리다를 영국에게 넘긴 대가였다.

스페인은 영국에 플로리다를 넘긴 대가로 쿠바의 아바나를 손에 넣었고, 영국은 북아메리카 동쪽 절반의 식민지 지배를 공고하게 굳힐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프렌치 인디언 전쟁이 막 끝난 1763년, 루이지애나의 소유권이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간 후, 미시시피 강에서의 농산물 수송 선박 운항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미국은 1795년 스페인과 핑크니 조약을 맺으면서 뉴올리언스에서의 선박 운항권을 확보한 적이 있었다.

나폴레옹의 북미 대륙 진출에 대한 야망

북미대륙에서 영국과의 전쟁을 끝낸 프랑스의 당시 지도자인 나폴레옹은 식민지 제국의 꿈을 북미 대륙을 통해 더욱 공고하게 굳히기 위해 1800년 10월 비밀리에 스페인과 산일데폰소 조약을 체결하면서 다시 루이지애나를 스페인으로부터 양도 받게 되었다.

나폴레옹은 북미에서 프랑스의 영토가 확장될 경우, 영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게돼, 북미에 주둔하고 있는 스페인의 식민지가 보호 받을 것이라는 말로 당시 스페인을 설득했다.

프랑스는 스페인으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돌려 받는 대신에 이탈리아의 투스카니 지역을 내어주었고, 유사전쟁(Quasi War)을 치루며 그간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미국과는 같은해 9월 몰토퐁텐 조약을 맺으면서 유화책을 펼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1800년 나폴레옹이 스페인으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되찾아 오게 되면서 미국은 루이지애나에서의 선박 운항권 획득을 위해 다시 한 번 프랑스와 협의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는데, 당시 프랑스 군주인 나폴레옹은 미국 선박들에게 관세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의 좌절이 불러온 미국의 루이지애나 매입

이 모든 작업을 순조로히 마친 나폴레옹은 북미 대륙의 식민지 건설을 위한 야망을 하나씩 실현해 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1795년 바젤조약을 통해 스페인으로부터 양도받은 아이티에서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독립을 선언해 버리자, 나폴레옹에게는 큰 변수가 생긴 샘이 되었다.

설탕과 커피의 주요 공급 지역인 아이티 에서의 반란을 묵과할 수 없었던 나폴레옹은 1801년 11월, 3만여명의 원정대를 아이티에 파견해 반란진압을 시도했다. 프랑스 군대의 아이티 원정의 초기 활동은 순조로운 편이었지만, 1803년 11월 프랑스 군대는 아이티에서 아예 철수해 버렸다.

그 이유로는 현지 반란군들의 강한 저항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황열병으로 인해 프랑스의 군대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 해군의 강력한 해상 봉쇄 작전 때문에 프랑스 본토에서 아이티로의 추가 파병이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북미의 식민지 건설을 위한 나폴레옹의 야망은 아이티의 반란군 진압이 실패로 돌아가자 큰 좌절을 겪게 된다. 더욱이 아이티 반군 진압을 위해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면서 자금난까지 겹쳐친 프랑스는 당시 프랑스를 방문중이던 미국 사절단에게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팔겠다는 뜻밖의 제안을 하게 된다.

뜻 밖의 횡재를 거머쥔 미국

당시 프랑스 대사 자격으로 프랑스를 방문했던 먼로와 리빙스턴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루이지애나 매입과 관련된 제안을 나폴레옹 으로부터 접하게 되자, 엄청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미국 의회의 승인 없이 사절단 단독으로 결정할 만한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해당 거래에 대한 법적 근거는 없었으나 당시 프랑스를 방문중이던 미국 사절단은 일단 가격협상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미국 입장에서는 그 거래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남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들은 루이지애나를 거쳐 미시시피 강을 통해 운반될 수 있었는데, 이러한 물류 운반 수송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1795년 스페인과 핑크니조약을 맺으면서 미시시피 강에서의 선박 운항권과 뉴올리언스에서 무관세로 선박을 운행할 수 있도록 보장받았다.

그런데 1800년 루이지애나의 소유권이 프랑스로 바뀌자 당시 미국 대통령인 제퍼슨은 큰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다시피, 1802년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에 정박하는 미국 선박들에게 그 동안의 무관세 정책을 폐지하겠다는 법령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미국 농민들의 불만은 쌓여만 갔고, 미국의 제퍼슨 대통령은 루이지애나를 매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미국 의회를 설득해, 결국 뉴올리언즈 매입과 관련된 동의를 얻어낸 다음, 해당 협상의 사절단 대표로 제임스 먼로를 프랑스의 파리로 파견하게 되었다.

당시 루이지애나의 최종 매입 가격은 1,500만 달러로 제시되었고, 최종 매매계약은 1803년 4월 30일 체결되었다. 미국은 결국 루이지애나 매입을 계기로 본격적인 서부 개척 시대를 열수 있게 되었다.

루이지애나를 프랑스로부터 사들인 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서부 지역에 더 많은 주를 건설하기 위해 서부 탐험대를 조직해 서부 지역에 파견하게 되었다. 그 밖에도 루이지애나 매입은 당시 미국 남부지역의 농작물 생산 증강에도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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