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풀릴 기미 보이는 미국의 노숙자 문제

Christopher Michel from San Francisco
캘리포니아의 많은 노숙 야영지들이 이제는 철거 대상에 포함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주 또는 시 차원에서 노숙인들의 집단 야영지를 철거하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어 왔지만, 그 때마다 미국의 제9항소법원(9th Circuit Court of Appeals)이 제동을 걸어와 노숙인들의 야영지를 철거할 수 없었다.
제9항소법원은 미국의 연방 법원으로서, 미국내에 총 13개의 법원이 여러 주에 걸쳐 있으며, 캘리포니아 주에만 중부와 동부 및 북부, 그리고 남부 지역에 걸쳐 총 4군데의 항소법원이 있다. 제9항소법원을 총괄하는 본청은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해 있다.
미국의 제9항소법원은 노숙자들의 야영지를 철거하는 것은 수정헌법 제8조를 위반하는 것이라는 이유를 들며 제동을 걸었다. 노숙자들의 야영지 철거 문제는 2018년 관할 지역에서 캠핑을 금지한 오레곤주 남부의 작은 도시인 그랜츠 패스(Grants Pass) 시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에서 비롯되었다.
해당 소송을 담당했던 하급 법원은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그랜츠 패스의 조례가 불법적”이라면서 노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결정은 같은해 이미 판결이 났던 제9순회항소법원의 판결인 마틴대 보이시(Martin v. Boise)의 판결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었다.
마틴대 보이시(Martin v. Boise) 판결의 영향
2018년 이루어진 보이시 판결은 “공공장소에서 야영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은 잔인하고 비정상적이며, 이러한 처벌을 금지하는 수정헌법 제8조를 위반하는 것”이라 판시했고, 그 결과 보이시 판결은 노숙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대피소가 부족할 경우, 그들의 야영지를 철수시킬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돼,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노숙자들의 야영을 허락하는 쪽으로 해석되었다.
이에 노숙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대피소가 턱없이 부족한 캘리포니아의 여러 도시들 중, 특별히 샌프란시스코와 새크라멘토(Sacramento) 및 치코(Chico), 그리고 산라파엘(San Rafael) 등의 도시에서 노숙자들의 야영지 철수가 중단되거나 연기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에 캘리포니아 주의 여러 도시들을 포함하여 미국 전국의 많은 도시들은 제9항소법원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항소하게 되었고, 미국의 대법원은 해당 항소건을 지난 6월 28일 판결했다.
미국 대법원의 결정
미국의 대법원은 6대 3으로 각 지방 공무원들이 노숙자들의 야영지를 철거하는 것은 수정헌법 8조를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노숙자 야영지에 대해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제9순회항소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것이라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수정헌법 8조는 과도한 보석금 또는 과도한 벌금 부과나,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처벌이 가해져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9항소법원은 노숙자들이 공공장소에서 야영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처벌”로 간주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법원은 공공장소에서의 야영 규제는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처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하면서 그 이유를 “오레곤 주 그랜츠 패스의 처벌 유형인, 제한된 벌금과 최대 30일의 징역형은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처벌]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제 미국의 각 주와 도시들은 노숙자들이 공공 장소에서 야영하는 것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게 됐으며, 공공장소에서 야영하는 노숙자들을 추방하고 체포하는 권한은 각 지역 도시 또는 카운티의 재량권에 맡겨지게 되었다.
여러 시민단체들의 엇갈린 반응
노숙자를 대표하는 수석 변호인인 에드 존슨(Ed Johnson)은 “대법원의 결정이 매우 실망스럽고, 노숙자 문제 해결은 법원의 몫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숙자들을 지지하는 활동가들 역시 대법원의 판결을 비난하면서 “이제 노숙자라는 이유만으로 체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립노숙자법률센터(National Homelessness Law Center)의 대변인인 제시 라비노위츠(Jesse Rabinowitz)는 “제9순회항소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대법원의 판결이 매우 실망스럽고, 사람들의 기본권을 체포나 벌금 부과로 제한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며 잔인한 행위”라며 “대법원은 부자와 권력자들의 필요를 먼저 채워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도시 연맹과 캘리포니아의 카운티 협회, 그리고 캘리포니아 상공회의소 등은 미국 대법원의 판결을 적극 지지한다는 성명을 공동 명의로 발표했다.
베이지역협의회(Bay Area Council)의 CEO인 짐 분더만(Jim Wunderman)은 “마침내 비위생적이고 안전하지 않은 노숙자들의 야영지를 제거할 수 있게 됐다”며 “해당 판결은 노숙자들의 보호소 제공 및 그들의 필요를 제공하려는 방해물들을 제거하고 공공 질서를 회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 담당자들이 취해오던 조치들
캘리포니아의 여러 도시에서는 이미 노숙자들의 야영지를 단속하고 있었지만, 도시 전체가 아닌 일부 특정 지역에 노숙자들의 캠프를 금지함으로써 보이시 판결을 피하고 있었다.
단적인 예로, 샌디에고는 최근 학교와 버스 환승 근처 및 공원, 그리고 모든 공공 보도와 대피소가 있는 장소에서 노숙자들의 야영을 금지하는 조례를 시행해 오고 있었으며, 동시에 약 500명의 노숙자들이 야영할 수 있는 캠프장 2곳도 열었다.
그리고 샌디에고는 최근 대피소가 충분할 경우에만 모든 거리에서 노숙자들의 야영지를 철거하겠다는 조례를 통과시킨 가운데, 토드 글로리아(Todd Gloria) 시장은 “우리는 대법원 판결과 상관없이 기존에 해 오던대로 대피소를 계속 확장하면서 노숙자들의 야영지를 제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의 판결에 힘입어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개빈 뉴섬은 목요일(2024년 7월 25일) 노숙자들의 야영지를 철거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린 가운데, 샌프란시스코의 런던 브리드(London Breed) 시장은 “노숙자들의 야영지를 철거하는 것에 대한 조치를 이미 취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브리드 시장은 “도시의 야영지 정리 팀과 봉사 활동 팀원들은 노숙자들을 실내로 데려오는 한편, 그들의 야영지를 철수하기 위해 매일 밖으로 나가고 있는 중”이라며 “이로 인해 우리 도시의 노숙자들 텐트 수는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